오늘도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장태근· October 11, 2025 · 5 min read

『오늘도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한수희, 터틀넥프레스, 2023)
『오늘도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한수희, 터틀넥프레스, 2023)

명절에 참여한 챌린지에서 추천받은 인문학 책을 읽었다.

책속으로

마음이 조급해질 때는 오지 않는 기차를 다섯 시간 동안이나 기다리던 인도 사람들의 느긋함을 떠올린다. 바쁘고 힘들 때면 깨끗하고 고요한 거리들을 천천히 산책하던 시간과, 맛있는 커피를 앞에 두고 즐기던 시원한 오후와, 수영장에서의 망중한, 산호를 줍던 해변을 기억한다. 이 세상에는 길이 하나밖에 없고, 정답은 정해져 있다는 압박감을 느낄 때면 여행지에서 만난 수많은 인생을 생각한다. 나는 이런 것들을 위해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 돈독한 우정을 쌓기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 물론 학교나 직장에서처럼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양한 사람과 매일 얼굴을 맞대야만 하는 상황이 줄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에게도 그간 기나긴 우정의 역사가 쌓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떤 사람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떤 우정이 우리를 질식하게 만드는지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로 안다는 것은 나를 가두는 담장이 된다.

인간의 개성은 타인과 내가 부딪치는 경계에서 마찰흔처럼 드러난다. 자기만의 방에 갇힌 채 내 좁은 시야 안에 들어오는 것들만을 세상의 전부로 여기지 않기 위하여, 나만 피해자라는, 내 인생만 망했다는 착각에서 헤어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하여 우리는 오늘도 문을 열고 타인과 지지고 볶는 삶을 향해 한 발을 내딛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는 건 쉽다. 하지만 그걸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거의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 노력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뭔가를 해낸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의 결정적 차이라고 본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다. 세상에는 당신들만큼이나 외롭고, 종종 자괴감에 빠지고, 늘 혼란스러워하고, 시기심과 분노와 불안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내가 쓴 글이 최소한 사람들의 힘 빠진 손목을 슬쩍 잡았다 놓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다. 온기는 금세 사라지겠지만, 온기에 대한 기억은 오래 남을 수 있으니까. 수많은 책과 영화를 보면서 느낀, 지금까지 나를 힘내어 살아갈 수 있게 해주었던 그 온기들 말이다.

집중력을 잃어갈 때 끝내 전달한 저자의 진심은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은 이유를 완성시켰다.

마치며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그가 사랑한 예술작품(책, 영화)과 함께 풀어낸다. 예술 작품과 함께 전하는 메시지는 때로 담담한 위로가 되고, 때로는 깊은 통찰로 다가왔다.

부제처럼 '어제보다 한 칸 더'나아가고 싶은데, 현실은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진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꾸밈없이 기록한 짧은 일기장은 온기를 넘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참고 자료

@장태근
개발자. 명료한 생각이 명료한 글이 된다.